지난 주 금요일 매일성경을 통해,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묘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거주하던 헤브론 지역의 헷 족속 사람들에게 큰 절을 하며 예절을 갖추어 사라의 묘지를 구입하는 과정을 길게 설명하는 창세기23장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정해 주셨다면서 강제적으로 그 땅을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살고 있었던 지역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었으며 땅 값도 넉넉히 계산해 주면서 묘지 구입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지역의 사람들은 그냥 편안하게 묘지 자리를 사용해도 된다면서 호의를 베풀어 줍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헤브론 지역 사람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은 400세겔의 토지 값을 지불하고 사라의 묘지를 구입하여 자기의 소유로 삼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었습니다.
제가 아브라함은 아닙니다만,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일본 가와사키에서 이웃들에게 얼마나 예의를 갖추며 교제를 해 왔는가 되물으며 생각해보니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긴 했으나 이웃에게 베풀어야 할 나의 예의가 너무 부족하였음을 고백하지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구원자 예수님이 필요한 현실적인 이웃은 누구일까?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특정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이 우리가 만나야 할 이웃이라고 생각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 이주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여전히 도움이 필요합니다. 또한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내면의 상처와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는 이들, 실패와 상실로 무너진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 혹은 중독이나 잘못된 선택으로 스스로를 잃어버린 사람들 역시 회복이 필요한 우리의 이웃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과 이해,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들이 멀리 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사실이며,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성도들이 VIP 이웃을 데리고 오지 않아서 저의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성도간의 교제의 즐거움에 빠져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의 존재 목적을 잃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이웃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말을 건네시고 대접해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남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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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고 젊은 시절, 다니던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통하여 이미 검정된 지식들을 커리큘럼에 따라 먼저 배운 뒤에 그 성과를 증명해 보는 학기말 시험을 나중에 치르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실전에서는 가혹할 정도로 그 전후를 뒤 바꿔 놓는 경우가 자주 일어 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예습도 하지 못한 채, 인생의 거친 파도 속에 내 던져지기도 하고 그 위기의 한복판에서 생존하는 법을 온 몸으로 체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거친 삶의 현장은 곧 배우지도 않은 것을 테스트하는 시험장이 되며, 우리 앞에 놓인 인생이라는 시험지 위에는 오답이란 존재 하지 않습니다. 거기엔 오직 ‘아직 배우지 못한 지혜들’ 만 존재 할 뿐 입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수 많은 순간들과 예상치 못한 좌절들은, 보이지 않던 내면의 힘을 길러내어 주는 가장 치열한 과외 수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통스러운 시험의 과정을 통과하며 얻은 수 많은 상처들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통찰의 눈으로 바꿔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고통스런 인생의 시험을 마주 할 때 마다 고민하면서 찾아야 것은 결코 완벽한 정답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이라는 시험 앞에서 배움을 찾겠다는 유연한 태도가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자신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인생이라는 불안감에 발을 멈추기 보다, 부딪치고 깨지는 과정 자체를 피해 다니기 보다, 시련의 시험이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하며 성장하게 하는 필연적인 경로라고 인정하며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자주 닥쳐 오는 시련이라는 도전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성숙으로 이끌어 주는 지혜의 성찬으로 여길 때,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어느 날인가, 시련의 고통을 넘어선 배움과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고백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고후4: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