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북한 피난민 출신이셨습니다. 고향을 뒤로한 채 남으로 내려와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고, 여덟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홀로 짊어지셨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의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의 연속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살아오셨지만 군사혁명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실직은 아버지의 인생을 크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오랜 실업의 시간은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을 무너뜨렸고,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애쓰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강인했던 아버지의 기세가 꺾인 모습을 보며 어린 저의 마음에도 인생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무섭고 엄한 분이셨습니다. 쉽게 웃음을 보이지 않으셨고 자녀들에게도 엄격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는 멋을 즐기셨습니다. 머리를 반듯하게 올백으로 넘기고, 흰 양복에 흰 구두를 맞춰 신으신 모습은 언제나 세련되고 당당했습니다. 그런 아버지 곁에는 늘 멋진 친구들이 함께했고, 사람들은 아버지를 신뢰하고 좋아했습니다.
술을 한 잔 드시면 어김없이 북녘 고향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시며 말없이 눈물을 훔치시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아버지, 곧 나의 할아버지를 기념하는 맹산 장학회를 운영하시며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자신은 힘든 삶을 사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남기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교회를 다니셨지만 청년의 때는 신앙을 떠나 지내셨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권유로 장년이 되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셨고, 믿음을 회복하며 신앙 안에서 삶의 평안을 찾아가셨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복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말년에는 뇌출혈로 두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셨고, 끝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이제는 곁에 계시지 않지만, 피난민의 아픔을 견디며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삶, 엄격함 속에 숨겨진 사랑, 그리고 믿음을 회복한 모습은 저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저에게 아버지는 고난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던 한 사람의 가장이자, 끝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간 믿음의 사람이셨습니다. 보고 싶네요.
조남수 목사
줄 담배를 피우면서 건강에 좋다고 매실 주스를 즐겨 마신다는 어떤 분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매실 주스를 얼마나 마셔야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분을 보면서 그렇게 자신의 건강을 신경 쓰고 사신다면 매실 주스를 마시는 것보다, 먼저 줄 담배 피우는 것을 끊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리는 수 많은 광고들로 부터 영향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건강식품들을 복용해야 자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확실히 아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건강식품이 자신의 미래를 지켜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술과 담배를 끊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그 어떤 건강식품을 먹는 것 보다 더 좋을 것이 뻔한데도, 이런 상식적인 것을 무시하고 지엽적인 것에 신경을 쓰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이어트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음식을 덜 섭취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당연한 해결책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고기만 먹고 탄수화물을 피한다던가, 반대로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지방만 피한다든지, 이렇게 부선 떠는 것을 보면 안타깝고 무섭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연한 것을 무시하고 지엽적인 것에 집중하는 현상은 신앙생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가장 큰 계명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과 몸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대계명과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 만들라고 하는 대사명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당연한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다고 답답해 하는 성도들이나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를 만들면 되는데, 어떻게 봉사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분들은 지엽적이면서 우선순위가 아닌 것에 집중을 하다 보니 방향감각을 잃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지엽적인 것에 메이지 말고 분명한 하나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계명에 집중하면 많은 관계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고, 대사명에 집중하면 봉사의 방향이 분명하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