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목사님들이 설교하기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인기가 많다는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쉽게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도님은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시간되는 대로 다 듣고 은혜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는 설교를 매 주일 준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아하는 교회 목사님들의 여러가지 설교와 예배 방송을 쉽게 시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일에 번거롭게 교회까지 나갈 필요도 없이 YOUTUBE로 다른 교회의 예배 방송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 편하게 예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일에 교회 나가서 설교를 들어야만 할까요? 그 대답은 성령님의 역사 입니다. 설교 말씀이 설교자의 입을 떠나 회중속에 앉아 있는 성도님들의 귀에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상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설교 준비하면서 정말 훌륭한 설교를 준비했다는 느낌이 들고, 이 설교를 듣는 성도님들이 많은 은혜를 받고 신앙의 결단도 하고 봉사의 헌신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그런데 막상 설교를 마친 후에 분위기를 보면, 헌신 봉사를 결단하시는 분도 별로 없고 반응도 냉랭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제 설교를 다시 들어보면 여전히 괜찮은 설교라고 느껴지는 데도 불구하고 현장에서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설교 준비가 잘 안 된 기분으로 강단에 설 때도 있었습니다. 마치 뜸이 들던 밥을 손님에게 대접 하는 것과 같은 불안감을 갖고 강단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예배가 마치고 나면 많은 성도님들이 설교에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또 헌신 봉사 하겠다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나중에 설교를 다시 들어 보면, 여전히 미완성 같은 설교인 것 같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요? 이것은 성령님의 역사하심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선포된 말씀을 성령님이 어떻게 들어 쓰시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인간적인 말로 표현 한다면 ‘분위기’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분위기 때문에 우리는 설교를 현장에서 직접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방송을 통해 듣는 설교는 지식 전달에 불과합니다. 예배에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예배 중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시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잘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조남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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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皆さんもご存じだと思いますが、世界的な作家アーニー・J・ゼリンスキーの『ゆっくり生きる楽しみ(Don’t Hurry, Be Happy)』には、次のような言葉があります。「私たちの心配事の40%は決して起こらない出来事についてのものであり、30%はすでに起こった出来事、22%は取るに足らない出来事、4%は自分では変えられない出来事に関するものである。残りの4%だけが、私たちが対処できる本当の問題である。つまり96%の心配事は無駄なものである。」
 私は多くの悩みを、たった二つに分けて考えることができます。自分で心配し、解決できる悩みと、自分では解決できない悩みです。明日雨が降ったらどうしますか?傘を準備すればいいのです。雨を止めることは自分の能力の範囲を超えています。それは神の領域です。つまり、神の領域に属する問題は神様に委ねるべきだということです。そして、神様が自分に与えてくださった力や才能で解決できる問題だけを考え、解決策を見つけようとするのがよいでしょう。
 私はすべてにおいて楽観主義者でもなければ、かといって悲観的な厭世主義者でもありません。「悲観主義者は名声を得て、楽観主義者はお金を稼ぐ」という言葉があるように、悲観主義者は危機的状況で論理的な主張を展開して認められることはあっても、行動しないために機会を逃してしまうことが多いのです。できるだけ私は、悩みの核心を正確に把握し、問題解決への方向を見いだそうと努めています。
 皆さんは何か悩みがあるでしょうか。頭を抱えて何日も寝込みながら心配すれば、その問題は解決するでしょうか。それとも静かな海辺に行って数日休めば、解決方法が思い浮かぶでしょうか。必ずしもそうとは限りません。ある問題について私たちが考えられる時間は、それほど長くないのかもしれません。何か心配事があれば、それを紙に書いてみてください。きっと三、四行に過ぎないはずです。そのわずかな問題について10分以内に答えが出ないのであれば、それは自分で解決できる悩みではないのかもしれません。それなのに、皆さんはその10分を輪ゴムのように引き延ばして、一日を無駄にし、一か月を浪費し、一年を台無しにしてはいないでしょうか。それとも、解決方法を知っているのに、それを実行に移すことを恐れてはいないでしょうか。解決方法のない問題は、神様に委ねる祈りを捧げてください。ですから聖書はこう語っています。「あなたの道を主にゆだねよ。主に信頼せよ。主が成し遂げてくださる。(詩篇37:5)」

趙 南洙師



 모든 분들이 아시리라 봅니다만, 세계적인 작가 어니 J.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DON’T HURRY, BE HAPPY)’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들이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다. 즉 96%의 걱정거리들이 쓸데없는 것이다.”
 저는 많은 고민거리를 오직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걱정해서 해결할 수 있는 고민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있습니다. 내일 비가 오면 어떻게 합니까? 우산을 준비하면 됩니다. 비를 멈추는 일은 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는 하나님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께서 저 자신에게 주어진 힘과 재능으로 풀 수 있는 문제들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
 저는 모든 일에 대한 낙관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염세주의적인 비관론자도 아닙니다. “비관론자는 명성을 얻고 낙관론자는 돈을 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관론자는 위기 상황에서 논리적인 주장을 펼쳐 인정받지만 행동하지 않아 기회를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저는 고민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고민이 있다고 합시다. 머리를 싸매고 몇 일 동안 드러누워 걱정을 하면 그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으시나요? 아니면 조용한 바닷가로 가서 몇 일을 쉬면 해결 방법이 생각나는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도 안 됩니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다면 그것을 종이에 적어 보십시오. 틀림없이 서너 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몇 줄 안 되는 문제에 대해 10분 안에 해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 10분을 고무줄처럼 길게 늘리면서 하루를 놓치고 한 달을 허비하며 1년을 망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혹시 해결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행동에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까? 해결 방법이 없는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시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시편37:5)”

조남수 목사